더구나 설교자가 나름의 신앙적인, 인격적인 진정성을 확보했을 경우에는 청중이 이런 설교의 가벼움과 유혹에 훨씬 쉽게 빠져든다. 이렇게 진부한 명제로 치장하는 설교는 본문의 내면적 현실성(reality)을 보지 못하고 외면에 머무른다는 점에서 가벼움이며, 하나님의 존재 신비가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태도에만 머물게 한다는 점에서 유혹이다. 그렇다면 이 본문에서 하나님의 존재 신비를 읽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마태복음 기자는 제자들과 아이 아버지의 믿음 유무가 아니라 예수의 믿음에 존재론적으로 담지된 메시아적 징표에 대한 두려움을 이 사건을 통해 진술한다. 간질병 아이를 기적적으로 고칠 만큼 믿음을 회복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에게만 가능한 그 믿음, 간질병 아이가 치유될 정도의 능력이 그에게서만 발현한다는 사실을 전하려는 것이다. 궁극적인 믿음은 오직 예수에게만 있다. 예수님께만 가능한 그런 믿음이 곧 하나님의 존재 신비이며, 그런 예수님을 믿는 것이 세상을 살면서 신앙적으로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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